라이프
첫 방한 천쉐 작가, 다음 작품은 ‘미투’
기사입력 2025.06.19. 오후 03:30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그는 여전히 창작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동력에 대해 그는 “연애할 때 상대가 나에게 없는 걸 주는 것처럼 글쓰기도 그런 경험을 준다”며 웃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 여전히 가장 매혹적이라며, 작가가 된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말했다.
천쉐는 1995년 첫 소설집 『악녀서』로 문단에 등장해 즉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여성 간의 정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타이완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절판됐지만, 독자와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복간됐다. 『악녀서』는 최근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천쉐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작품보다 성 정체성에 주목받는 데 불쾌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작품 자체보다 성 정체성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싫었다”며 “지금은 다른 대표작도 많고, ‘동성애 작가’로 불려도 괜찮다. ‘악녀서’가 여전히 언급되는 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천쉐의 작품은 성 소수자의 사랑만이 아니라 글쓰기의 본질, 고향의 정체성, 사회적 문제에 대한 성찰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작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글쓰기와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구조가 자주 나타난다. 이에 대해 그는 “글쓰기는 생명, 기억, 사랑을 다 상징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그 주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모계적 애정에 대한 표현 역시 천쉐 소설의 독특한 색깔이다. 그는 “많은 작가가 여성에 대한 표현을 아버지 중심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 틀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성과 여성 서사는 단순한 동성애적 상징이 아니라 새로운 문학적 구조와 감정의 재구성이다.
천쉐는 타이완 문학의 특성으로 ‘다원성’과 ‘개방성’을 꼽는다. 그는 “동성애, 향토성, 탈식민, 포스트모던 등 다양한 문학이 타이완 안에 존재한다”며 “유럽과 일본, 한국 문학의 영향도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작가 중 한강의 팬이라 밝히며 “광주 민주화운동에 관심이 있어 그를 더 주의 깊게 읽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박상영, 공지영, 김탁환, 김초엽 작가의 작품도 즐겨 읽었다고 밝혔다.
그의 차기작은 ‘미투 운동’을 주제로 한다. 원고 초고는 이미 완성했고, 배우자와 함께 내용을 토론하며 수정 작업 중이다. 이후에는 타이완의 섬 역사에 대한 장편 소설도 준비하고 있다. 천쉐는 “글쓰기를 멈추지만 않으면 너는 원고지 안에서 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문장을 인용하며, 앞으로도 꾸준히 쓰고, 더 넓은 세계와 접속해 나갈 것이라 다짐했다.
천쉐의 서울 방문은 단지 도서전에 초청된 해외 작가의 일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문학을 통해 정체성, 사랑, 사회를 말해온 한 작가의 여정이 30년을 넘어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 글쓰기”라는 그의 말은, 여전히 창작의 불꽃을 품고 있는 문학인의 단단한 신념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