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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탈춤 가면 닮은 셰익스피어 희극, ‘십이야’ 명동 상륙

기사입력 2025.06.25. 오후 03:27
 셰익스피어 5대 희극 중 하나인 ‘십이야’가 조선 시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지난해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지난 12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다시 무대를 올리며 관객과 만났다. 원작의 무대인 가상의 왕국 ‘일리리아’ 대신 인천광역시 중구 일대를 모티브로 한 ‘농머리’라는 어촌 마을로 장소를 옮기고, 무대 소품과 의상에서도 한국적인 정서와 세련미를 동시에 살렸다.

 

‘십이야’는 일란성 쌍둥이 남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며, 이번 공연에서도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히 재현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배우들이 구사하는 생생한 지역 사투리다. 공연은 황해도 민요 ‘사설난봉가’로 흥겹게 시작해 러닝타임 내내 경상도와 충청도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관객들에게 친근함과 웃음을 선사했다.

 

연출을 맡은 임도완은 서울 말의 억양은 재미없고 딱딱하다며, 사투리를 통해 보다 구수하고 정겨운 느낌을 주려 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작품 ‘코믹’에서도 옌볜 사투리 등 전국 각지 사투리를 활용해 지역색을 살린 바 있다. 이번 작품 역시 희극 본연의 웃음과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다. 관객들이 자유롭게 입·퇴장하고 조명도 끄지 않는 열린 객석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은 웃음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실종된 오빠를 대신해 남장을 한 ‘신애’에게 사랑에 빠진 ‘서린 아씨’가 ‘신애’의 경상도 사투리를 흉내 내는 장면과, 권위적인 ‘마름’(하인)이 ‘서린 아씨’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은 관객들의 폭소를 유발했다. 임도완 연출은 ‘신체극의 대가’로 불릴 만큼 배우들의 몸개그와 애크러배틱한 공중돌기 움직임이 어우러져 공연 내내 관객의 호응을 이끌었다.

 

배우들의 분장 역시 독특해 큰 웃음을 자아냈다. 모든 배우는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눈 주변만 까맣게 처리해 코믹함을 더했다. 공연 기간 중에는 ‘그림자 수어통역’이 제공되었는데, 수어통역사들도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화장을 해 무대 몰입도를 높였다. 이는 임도완 연출이 국립극단에서 선보인 ‘스카팽’의 분장을 연상시키는 스타일로, 등장인물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하고 동양인의 평평한 얼굴형을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분장이다. 이 분장은 봉산탈춤 가면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원작 ‘십이야’에 담긴 풍자와 해학도 이번 공연에서 살아 숨쉰다. 특히 광대 ‘북쇠’의 대사를 통해 위정자를 비판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임도완 연출은 “‘스카팽’에 비해 더 서민적이고 친근한 웃음”이라며 “현대 사회의 인간 욕망과 위선을 시원하게 꼬집는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십이야’ 공연은 7월 6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한국적 셰익스피어 희극을 찾는 관객들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진솔한 웃음과 신랄한 풍자를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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